---
title: "Zong호 학살 — 보험금을 위해 132명의 노예를 바다에 던진 사건"
published: 2026-01-21T22:05:26.000Z
canonical: https://jeff.news/article/1102
---
# Zong호 학살 — 보험금을 위해 132명의 노예를 바다에 던진 사건

1781년 영국 노예선 Zong호에서 보험금 청구를 목적으로 132명 이상의 아프리카 노예를 바다에 던져 죽인 사건. 이후 재판에서 노예를 '화물'로 취급한 판결이 영국 노예제 폐지 운동의 중대한 촉매가 됨.

## 사건의 배경

- 1781년 영국 노예선 Zong호에서 승무원들이 며칠에 걸쳐 **132명 이상의 아프리카 노예를 바다에 던져 죽인** 사건. 리버풀의 William Gregson 노예무역 신디케이트 소유 선박이었음
- Zong호는 원래 네덜란드 선박 "Zorg"였는데, 1781년 제4차 영국-네덜란드 전쟁 중 영국에 나포됨. 안전 수송 가능 인원의 2배가 넘는 **442명의 노예**를 싣고 아프리카를 출발함. 당시 영국 노예선의 톤당 평균 1.75명 대비, Zong호는 **톤당 4.0명**
- 선장 Luke Collingwood는 첫 지휘였고 중병이 걸림. 1등항해사는 다툼으로 직무 정지. 지휘 체계가 무너진 상태에서 자메이카를 눈앞에 두고 항해 오류로 **480km나 지나쳐 버림**

## 보험금이 동기였음

- 해상보험법상 노예가 육지에서 죽거나 "자연사"하면 보험 청구 불가. 하지만 **화물 일부를 버려 나머지를 구하면** "공동해손(general average)" 원칙으로 보험금 청구 가능. 노예 1인당 보험금 30파운드
- 11월 29일: 여성과 아이 **54명**을 선실 창문으로 바다에 던짐. 12월 1일: 남성 노예 **42명** 투하. 이후 며칠간 **36명** 추가. **10명은 이 만행에 항거하여 스스로 바다에 뛰어듦**
- 결정적으로, 12월 1일 42명을 죽인 날 **하루 이상 폭우가 쏟아져 11일치 식수(6통)를 확보**했음. 그런데도 세 번째 학살을 진행함. 자메이카 도착 시 선박에는 420갤런(1,900리터)의 물이 남아 있었음

## 재판과 법적 유산

- 선주가 보험사에 보험금 청구 → 보험사 거부 → 소송. 1783년 1심에서 배심원은 **선주 측 승소** 판결. 노예를 "화물"로 취급하는 해상보험 관례를 적용한 것
- 항소심에서 새 증거(학살 중 폭우로 물 부족이 해소됐다는 사실)가 제출되어 재심 명령. 하지만 승무원 중 **누구도 살인죄로 기소되지는 않음**
- 이 사건이 영국 노예 폐지 운동의 강력한 촉매가 됨. 1787년 노예무역 폐지 협회 설립, 1788년 최초의 노예무역 규제법(선박당 노예 수 제한), 1791년 노예를 바다에 던져 죽인 경우 보험 보상 금지법 통과
- 1807년 노예무역법으로 영국의 대서양 노예무역 자체가 금지됨. Turner의 명화 "The Slave Ship"(1840)도 이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 [!NOTE]
> 이 사건의 핵심 교훈: 인간을 "화물"로 분류하는 시스템 설계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줌. 판사 Mansfield조차 공동해손 원칙의 상업적 유용성을 우선시하며, 물 부족이 선장 실수가 아니었다면 학살은 **법적으로 정당**했을 거라고 판시함

## 핵심 포인트

- 442명 탑재(안전 수용의 2배 이상), 톤당 4.0명
- 보험금 30파운드/인을 위해 142명 투하·사망
- 학살 중 폭우로 식수 확보했으나 세 번째 학살 계속
- 1심 선주 승소 후 항소심에서 재심 명령, 그러나 살인 기소는 없었음
- 영국 노예무역 폐지 운동의 직접적 촉매

## 인사이트

인간을 '화물'로 분류하는 법적 시스템이 만들어낸 극단적 결과. 시스템 설계가 윤리를 배제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