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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CP/M-86은 왜 늦었나 — MS-DOS가 이긴 진짜 이유"
published: 2025-12-29T22:30:04.000Z
canonical: https://jeff.news/article/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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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P/M-86은 왜 늦었나 — MS-DOS가 이긴 진짜 이유

CP/M-86이 1년 넘게 지연된 원인을 추적하는 컴퓨팅 역사 기사. 게리 킬달의 PL/I 컴파일러 삽질(9개월 계획이 2년 초과)과 캐시 스트루틴스키에게 몰린 OEM 지원 업무가 핵심 원인이었음. 시애틀 컴퓨터의 팀 패터슨이 만든 '빠르고 더러운' 86-DOS가 MS-DOS가 되어 IBM PC에 탑재된 경위를 상세히 다루며, 저자는 CP/M-86이 제때 나왔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봄.

## 배경: CP/M의 전성기

- CP/M은 1978년 이미 8비트 비즈니스 마이크로컴퓨터의 업계 표준 OS였음. 당시 버전은 1.4
- 창립자 게리 킬달(Gary Kildall)은 마이크로컴퓨터에 제대로 된 고급 언어가 필요하다고 판단
- 처음엔 파스칼을 고려했다가, ANSI 표준 위원회에서 PL/I-G 서브셋을 접하고 컴파일러 개발에 착수

## PL/I라는 거대한 삽질

- 원래 계획: 9개월이면 완성. 실제 소요: **2년 넘게**. 1980년 말에야 PL/I-80으로 출시
- 컴파일러 품질 자체는 좋았음 — 킬달의 본업이 컴파일러였으니까
- 하지만 시장 반응은 냉담. 상용 마이크로컴퓨터 앱은 이후 10년간 대부분 어셈블리로 작성됨
- 킬달 본인도 나중에 "huge diversion(거대한 딴짓)"이었다고 인정
- 이 프로젝트가 CP/M 발전의 발목을 잡은 게 핵심

## "CP/M 2의 어머니" 캐시 스트루틴스키

- CP/M 1.4는 디스크 형상(geometry)이 BDOS에 하드코딩되어 있었음: 단면 단밀도 8인치 플로피 전제
- 더블 덴시티 디스크, 5.25인치 디스크, 하드디스크가 등장하면서 한계에 봉착
- 킬달은 디스크 특성을 BDOS에서 BIOS로 옮기는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당시 DRI 기술 인력은 킬달 포함 2명뿐
- 그래서 옛 직장 NPS(Naval Postgraduate School)에서 오랜 친구 **캐시 스트루틴스키(Kathryn "Kathy" Strutynski)**를 영입. DRI의 4번째 직원이 됨
- 하드드라이브 달린 컴퓨터가 딱 한 대. 스트루틴스키가 새벽 2시까지 쓰고, 킬달이 이어받는 식으로 **6주 만에 CP/M 2.0 완성**
- 이후 킬달은 다시 PL/I로 돌아갔고, 스트루틴스키가 혼자 CP/M 2.2를 완성 — 역대 가장 널리 쓰인 CP/M 버전

## CP/M-86이 늦어진 진짜 이유

- CP/M-86은 CP/M 2.2를 Intel 8086으로 "거의 직역 이식"하는 프로젝트. 원래 1979년 말 출시 목표
- 8086 자체가 8080에서 마이그레이션 쉽게 설계됐고, 인텔이 변환 테이블까지 제공. 기술적으로 어려울 이유가 없었음
- **문제는 OEM 지원 업무**. CP/M 2.2가 너무 잘 팔리면서 OEM들이 BIOS 적용에 손이 많이 갔고, 그 일의 대부분이 스트루틴스키한테 몰림
- 그중 하나가 **마이크로소프트**. 폴 앨런이 Apple II용 Z80 카드(SoftCard)를 만들면서 CP/M 라이선스를 받았는데, 스트루틴스키가 직접 앨런과 붙어서 OS를 적용함
- 스트루틴스키는 딸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방문, 딸은 폴 앨런의 소파에서 자고, 본인은 코드를 카드에 맞추느라 밤샘 작업

## SoftCard의 아이러니

- SoftCard는 한때 **마이크로소프트 최대 매출원**. 빌 게이츠에 따르면 CP/M이 가장 많이 돌아가는 하드웨어 플랫폼이기도 했음
- 저작권 표시에 Microsoft만 나오고 DRI는 안 나왔기 때문에, 많은 Apple II 사용자가 CP/M을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으로 착각
- 이 혼란이 나중에 IBM이 PC용 OS를 찾을 때 영향을 미침

## 86-DOS의 탄생: "빠르고 더러운" OS

- SoftCard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던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츠(SCP)**가 자사 8086 보드용 DOS를 원했음 (1979년 11월 출시)
- 1980년 4월까지 CP/M-86이 안 나오자 참다못해 젊은 엔지니어 **팀 패터슨(Tim Paterson)**에게 CP/M 유사 OS를 만들라고 지시
- 패터슨 본인도 "CP/M-86이 제때 나왔으면 절대 안 만들었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힘
- 이 **86-DOS**(일명 "Quick and Dirty Operating System")를 마이크로소프트가 사서 MS-DOS로 리브랜딩

## IBM이 왔을 때

- 1980년 8월 IBM 대표단이 DRI를 방문했을 때 보여줄 수 있었던 건 8비트 CP/M뿐
- IBM은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로 돌아갔고, MS-DOS가 IBM PC DOS로 탑재됨
- CP/M-86은 1981년 초에야 출시. 초기엔 16비트 시장의 **25% 점유율** 확보
- 하지만 IBM PC DOS가 CP/M-86보다 **훨씬 싼 가격**에 제공되면서 상황이 급반전

## 그 이후

- DRI 매출은 1981년 600만 달러에서 1983년 **4,460만 달러**로 성장. 직원 500명 이상, 해외 사무소 3곳
- 그러나 1985년이 되면 MS-DOS + PC 호환기종의 승리가 확정적
- DRI는 대량 해고, 핵심 인재 유출. 스트루틴스키는 안정적 일자리를 찾아 NPS로 복귀, **2010년 사망**
- 킬달은 1991년 DRI를 노벨(Novell)에 매각. 큰 부자가 됐지만 행복하지 않았고, 알코올 의존에 시달리다 **1994년 52세로 사망**

## 만약 CP/M-86이 제때 나왔다면?

- 일부 분석가: 1979년 12월 예정대로 나왔으면 IBM이 DRI와 계약했을 것이고, 86-DOS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
- 그 시나리오에선 멀티태스킹 Concurrent CP/M + GEM 데스크톱으로 1985년에 진정한 멀티태스킹 GUI OS가 가능했을 수도
- **저자의 견해: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 것**. DRI-IBM 간 딜이 안 된 이유는 복합적이었고, CP/M-86 준비 여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음
-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8비트용 M-DOS(미출시)를 만든 바 있고, FAT 파일시스템 포함한 Standalone Basic도 8086에 포팅 완료 상태
- 결국 초기 DOS는 기껏해야 수 KB의 머신 코드. MS는 충분히 처음부터 새로 만들 역량이 있었음

## 핵심 포인트

- 킬달이 PL/I 컴파일러에 2년 넘게 매달리면서 CP/M 발전이 지연됨
- 스트루틴스키가 6주 만에 CP/M 2.0을 완성하고 2.2까지 혼자 만들어 'CP/M 2의 어머니'로 불림
- CP/M-86 지연의 직접적 원인은 OEM 지원 업무 과부하 — 마이크로소프트 SoftCard 적용도 포함
- SCP의 팀 패터슨이 CP/M-86을 기다리다 못해 만든 86-DOS를 MS가 사서 MS-DOS로 리브랜딩
- CP/M-86은 1981년 초 출시 후 25% 점유율을 잡았으나 IBM PC DOS의 저가 공세에 밀림
- DRI 매출은 1983년 4,460만 달러까지 성장했지만 1985년 MS-DOS 승리 확정

## 인사이트

한 명의 핵심 엔지니어(스트루틴스키)에게 모든 것이 의존된 조직 구조가 역사를 바꾼 사례. 기술력이 아니라 자원 배분과 타이밍이 플랫폼 전쟁의 승패를 갈랐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