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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펠라 쿠티의 앨범 'Zombie' — 군부 독재를 좀비에 비유했다가 1,000명의 군인이 공동체를 습격한 사건"
published: 2026-02-01T23:15:35.000Z
canonical: https://jeff.news/article/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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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라 쿠티의 앨범 'Zombie' — 군부 독재를 좀비에 비유했다가 1,000명의 군인이 공동체를 습격한 사건

1976년 나이지리아 뮤지션 펠라 쿠티가 군부를 좀비에 비유한 앨범 Zombie를 발표했다가 군인 1,000명의 공동체 습격, 어머니 살해, 스튜디오 파괴라는 보복을 당했지만 굴하지 않고 저항을 이어간 이야기.

- 나이지리아의 아프로비트 뮤지션 펠라 쿠티(Fela Kuti)가 1976년 발표한 앨범 *Zombie*가 HN에서 재조명됨
- 군인들이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모습을 '좀비'에 비유해 나이지리아 군부를 정면으로 비판한 앨범임
- 대중에게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격분한 군부가 쿠티가 세운 자치 공동체 '칼라쿠타 공화국(Kalakuta Republic)'에 군인 1,000명을 동원해 습격함
- 쿠티 본인은 심하게 구타당했고, 고령의 어머니 푼밀라요 란솜 쿠티(Funmilayo Ransome-Kuti)는 창문에서 던져져 결국 사망함
- 공동체는 불태워졌고 스튜디오, 악기, 마스터 테이프가 모두 파괴됨. 쿠티는 지휘관 한 명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죽었을 것이라고 증언함
- 쿠티의 대응이 인상적임 — 어머니의 관을 라고스 군 본부 막사로 직접 배달하고, "Coffin for Head of State"와 "Unknown Soldier"라는 두 곡을 작곡함. "Unknown Soldier"는 공동체를 파괴한 범인이 '신원불명의 군인'이라는 정부의 공식 조사 결과를 비꼰 제목임
- 습격 1주년을 기념해 1978년에 자신의 댄서, 작곡가, 가수였던 여성 27명과 동시에 결혼하기도 함 (이후 동시 부인 수를 12명으로 줄이는 '로테이션 시스템'을 도입함)
- 가나 아크라 공연에서는 "Zombie" 연주 도중 폭동이 일어나 쿠티가 가나 입국 금지를 당했고, 베를린 재즈 페스티벌 이후에는 공연 수익을 대선 자금에 쓰려 한다는 소문이 돌아 밴드 멤버 대부분이 탈퇴함
- 음악적으로도 높이 평가받아 Pitchfork 선정 '1970년대 최고의 앨범 100' 중 90위, Treble Magazine의 '70년대 앨범 150선'에서 19위에 오름. 로버트 크리스트가우는 "제임스 브라운이 아프로-아메리칸이라면, 쿠티의 음악은 아메리칸-아프리칸"이라는 평을 남김
- 음악 한 장으로 군부 독재에 맞서고, 보복당하고도 굴하지 않은 펠라 쿠티의 이야기는 예술과 저항의 관계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임

## 핵심 포인트

- 군인의 맹목적 복종을 좀비에 비유해 나이지리아 군부를 정면 비판한 앨범
- 군부가 1,000명을 동원해 쿠티의 자치 공동체 칼라쿠타 공화국을 습격하고 어머니를 살해함
- 쿠티는 어머니의 관을 군 본부에 배달하고 저항 곡을 작곡하는 것으로 응수함
- Pitchfork 70년대 베스트 앨범 90위 등 음악적으로도 높이 평가받는 명반

## 인사이트

음악 한 장이 군부 독재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 예술의 정치적 힘과 그에 대한 권력의 폭력적 보복, 그리고 그럼에도 굴하지 않는 예술가의 저항이라는 보편적 서사가 50년이 지난 지금도 울림을 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