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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2차대전 암호 해독을 밀어붙인 방 크기 컴퓨터, 콜로서스가 IEEE 마일스톤이 됨"
published: 2026-07-22T19:40:44.000Z
canonical: https://jeff.news/article/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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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대전 암호 해독을 밀어붙인 방 크기 컴퓨터, 콜로서스가 IEEE 마일스톤이 됨

영국 블레츨리 파크의 콜로서스는 독일군의 로렌츠 암호 체계 ‘터니’를 깨기 위해 만들어진 세계 최초급 대규모 프로그래머블 전자식 디지털 컴퓨터였어. 1944년부터 초당 2만5000자급 처리 성능으로 독일 최고사령부 통신을 분석했고, 전쟁 단축과 현대 컴퓨팅 발전에 큰 영향을 남겼다는 점에서 IEEE 마일스톤으로 기념돼.

- 1941년, 영국 무선 감청 요원이 독일군 주파수에서 익숙한 모스 부호가 아닌 이상한 ‘음악’을 들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됨
  - 이 신호는 고속 이진 텔레타이프 코드였고, 독일이 에니그마보다 훨씬 진보한 암호·송신 체계를 쓰고 있다는 단서였음
  - 영국 암호 해독팀은 이 장비를 ‘터니(Tunny)’라고 불렀고, 전쟁이 끝난 뒤에야 베를린의 C. Lorenz가 만든 장비라는 게 확인됨

- 터니를 깨는 첫 돌파구는 독일군의 실수에서 나왔음
  - 약 1200자짜리 메시지 2개가 같은 바퀴 설정으로 전송됐고, 두 번째는 첫 번째를 약간 고쳐 다시 친 버전이었음
  - 존 틸트먼이 두 암호문과 평문 대응을 뽑아냈고, 빌 터트가 몇 주 동안 그 패턴을 파고들어 터니의 작동 방식을 거의 정확히 재구성함

- 문제는 ‘기계 구조를 안다’와 ‘매번 메시지를 깬다’가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는 점임
  - 터니에는 12개 바퀴와 조정 가능한 핀이 있었고, 각 핀은 암호화 과정에서 1 또는 0을 만들어냄
  - 독일군은 메시지 시작 부분에 12개 독일식 이름 목록을 붙여 초기 바퀴 위치를 알려줬는데, 이 힌트가 사라지면서 수작업 해독은 급격히 어려워짐

- 앨런 튜링은 ‘튜링어리(Turingery)’라는 방법으로 암호문만 보고 핀 위치를 추론하는 길을 열었음
  - 핵심은 델타잉(delta-ing), 즉 ABCD가 있으면 A+B, B+C, C+D처럼 인접 문자를 비트 단위로 더해 차이를 보는 방식이었음
  - 이 방법만으로도 1년 동안 150만 글자 분량의 암호문을 해독했지만, 독일군의 설정 재사용 실수가 줄어들자 한계가 뚜렷해짐

> [!IMPORTANT]
> 터니 메시지는 히틀러 본인이 서명한 경우도 있었고, 독일 최고사령부와 전선 지휘관 사이의 긴 왕복 통신이 담겨 있었음. 그냥 암호 하나 깬 게 아니라, 독일군 전략 회의실을 도청한 수준에 가까웠던 셈임.

- 빌 터트의 새 통계적 방법은 사람이 손으로 하기엔 너무 컸음
  - 긴 이진 시퀀스를 대량으로 세고 비교해야 했고, 손으로 처리하면 메시지 하나에 몇 달이 걸릴 수 있었음
  - 그래서 필요한 건 더 똑똑한 암호학자가 아니라, 루틴한 이진 연산을 미친 듯이 반복해줄 기계였음

- 토미 플라워스는 당시 기준으로 꽤 무모해 보이는 선택을 함 — 릴레이 대신 진공관 2000개짜리 전자식 기계를 만들겠다는 것
  - 당시엔 진공관을 많이 쓰면 금방 하나가 터져 전체가 멈출 거라는 믿음이 강했음
  - 플라워스는 진공관을 자꾸 켰다 껐다 할 때 망가지고, 계속 켜두면 릴레이보다 안정적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음

- 블레츨리 파크 자문단은 반대했지만, 플라워스는 런던 연구소에서 10개월 동안 조용히 콜로서스를 만들어냄
  - 1944년 1월, 콜로서스는 트럭에 실려 블레츨리 파크에 도착했고 약 2주 만에 재조립돼 작동함
  - 첫 독일 메시지를 처리한 날짜는 1944년 2월 5일이었음

- 콜로서스는 펀치 종이테이프를 광전 방식으로 읽고, 터니 바퀴 정보를 계산해 출력했음
  - 출력 장치는 수동 타자기에 릴레이를 붙여 자동으로 키를 누르게 만든 원시 프린터였음
  - 기계가 충분한 바퀴 정보를 찾아내면, 나머지는 사람이 이어서 해독하는 하이브리드 작업 흐름이었음

- 콜로서스 II는 더 세졌고, D-Day 직전인 1944년 6월에 완성됨
  - 진공관은 약 2400개로 늘었고, 처리 속도는 초당 2만5000자에 달했음
  - 기사에서는 이 타이밍 펄스 성능이 30년 뒤 1970년대 초기 인텔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멀지 않은 수준이었다고 설명함

- 전쟁 말기 블레츨리 파크에는 콜로서스 10대가 돌아가고 있었음
  - 두 개의 거대한 폭탄 방호 건물 안에서 밤낮없이 터니 메시지를 처리했음
  - 플라워스는 콜로서스가 현대 컴퓨터와 같지는 않지만, 클럭 펄스, 비트 스트림 생성기, 제어 회로, 루프, 카운터, 시프트 레지스터, 인터럽트, 병렬 처리 같은 기본 요소를 이미 품고 있었다고 봤음

- 전후에는 극비 유지 때문에 대부분의 콜로서스가 해체됨
  - 오퍼레이터 도로시 뒤 부아송은 “기계가 있던 바닥의 깊은 구멍만 남았다”고 회상함
  - 이번 IEEE 마일스톤 명판은 블레츨리 파크 H블록 바깥에 설치될 예정이고, 기념식은 9월 29일로 잡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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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 맥락

- 콜로서스의 핵심 선택은 릴레이가 아니라 대량의 진공관을 쓴 전자식 계산 장치였어요. 당시엔 진공관을 수천 개 쓰면 고장이 너무 잦을 거라고 봤지만, 플라워스는 계속 켜둔 상태가 오히려 안정적이라는 운영 조건을 알고 있었거든요.

- 여기서 자동화한 건 ‘암호 해독 전체’가 아니라 가장 지루하고 큰 계산 덩어리였어요. 터트의 통계적 방법은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사람이 하면 메시지 하나에 몇 달이 걸릴 만큼 카운팅이 많았고, 콜로서스는 그 병목을 기계로 밀어낸 거예요.

- 현대 컴퓨터 관점에서 재미있는 지점은 콜로서스가 범용 개인용 컴퓨터는 아니었지만, 클럭, 카운터, 시프트 레지스터, 병렬 처리 같은 구성 요소를 실제 작전 환경에서 썼다는 점이에요. 전쟁 압박이 ‘이론적으로 가능함’을 ‘돌아가는 시스템’으로 바꾼 사례라고 볼 수 있어요.

## 핵심 포인트

- 콜로서스는 에니그마보다 진보한 독일 로렌츠 암호 체계를 깨기 위해 만들어진 전자식 디지털 컴퓨터였음
- 토미 플라워스는 당시 불안정하다고 여겨지던 진공관 2000개 규모 설계를 밀어붙였고 실제로 작동시킴
- 콜로서스 II는 초당 2만5000자를 처리했고, 1970년대 초기 인텔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비교될 정도의 타이밍 성능을 냈음
- 전쟁 말기 블레츨리 파크에는 콜로서스 10대가 밤낮없이 돌았지만, 전후 극비 유지 때문에 대부분 해체됨

## 인사이트

요즘 컴퓨터 역사는 보통 트랜지스터와 마이크로프로세서부터 떠올리기 쉬운데, 콜로서스는 ‘현대 컴퓨터의 기본 아이디어’가 전쟁이라는 압박 속에서 이미 꽤 많이 구현됐다는 걸 보여줘. 특히 신뢰성 없다고 욕먹던 진공관을 대량으로 켜둔 채 쓰면 오히려 안정적이라는 판단은 엔지니어링 감각 그 자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