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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카이사르의 마지막 말 \"Kai su, teknon\"은 작별 인사가 아니라 저주였다 (2018)"
published: 2026-03-17T23:42:50.000Z
canonical: https://jeff.news/article/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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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사르의 마지막 말 "Kai su, teknon"은 작별 인사가 아니라 저주였다 (2018)

셰익스피어의 'Et tu, Brute?'로 유명한 카이사르의 마지막 말이 사실은 배신에 대한 슬픈 탄식이 아니라 고대 저주 석판에서 유래한 저주('지옥에서 보자')였다는 해석을 소개하는 런던 리뷰 오브 북스의 서평. 브루투스의 도덕적 양면성과 그의 암살이 스토아가 아닌 플라톤주의 정치철학의 실천이었다는 분석을 다룸.

## 카이사르의 마지막 말: 작별 인사가 아니라 저주였다

셰익스피어의 "Et tu, Brute?"로 유명한 카이사르의 마지막 말 "Kai su, teknon"(너도냐, 아이야)이 사실은 감동적인 작별이 아니라 **저주**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 주목받고 있음.

- James Russell의 1980년 논문에 따르면, "kai su"라는 표현이 고대 그리스-로마의 **저주 석판(curse tablet)**에서 빈번하게 등장함
- 즉 카이사르의 마지막 말은 "배신당한 아버지의 슬픈 작별 인사"가 아니라, **"지옥에서 보자, 이 녀석아(See you in hell, punk)"**에 가까운 의미였다는 것임
- 런던 리뷰 오브 북스의 서평에서 Kathryn Tempest의 브루투스 전기를 다루며 이 해석을 "자주 간과되어 온 중요한 논문"으로 재조명함

## 브루투스: 영웅인가 악당인가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브루투스 흉상이 이 인물의 도덕적 양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줌.

- 흉상의 왼쪽 프로필은 정교하게 완성되어 있으나, 오른쪽은 끌 자국이 남은 거친 표면으로 남아 있음
- "미켈란젤로가 해방자의 얼굴을 조각하려 했을 때, 고귀한 음모자가 아닌 부당한 압제자를 발견했다"는 일화가 전해짐
- 한쪽에서 보면 이상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영웅이고, 다른 쪽에서 보면 친구이자 후원자를 살해하고 로마를 내전으로 몰아넣은 냉혹한 이념가임
- 단테는 브루투스를 유다 이스카리옷 옆,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 배치함

## 스토아학파가 아닌 플라톤주의자

브루투스의 카이사르 암살이 단순한 정치적 행위가 아닌 **철학적 실천**이었다는 분석이 핵심임.

- 철학자 David Sedley의 1997년 논문이 "브루투스가 사실상 스토아학파였다"는 역사학계의 통념을 완전히 뒤집음
- 음모에 가담한 인물 중 스토아학파는 **단 한 명도 없었음** — 스토아 철학에 따르면 폭정 하에서도 인내하며 견디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기 때문
- 브루투스는 젊은 시절부터 **구아카데미(Old Academy)**, 즉 원류 플라톤주의에 헌신함
- 플라톤의 『정치가(Statesman)』에 나오는 6가지 정부 형태 분류에서, 최악의 정체는 **법을 무시하는 1인 지배(monarchia paranomos)**임
- Sedley의 결론: "우리가 3월 15일 브루투스의 행동을 볼 때, 실행되고 있는 것은 플라톤주의 정치사상임"

## 암살 당일: 거의 실패할 뻔한 거사

기원전 44년 3월 15일, 암살 계획은 여러 차례 무산될 위기에 처함.

- 최대 80명이 음모에 가담했음에도 사전에 발각되지 않은 것이 놀라움
- 카이사르의 아내 칼푸르니아가 불길한 꿈을 꾸어 외출을 만류했으나, 데키무스 브루투스가 "설마 그런 미신을 믿으시겠습니까"라며 카이사르를 데려옴
- 누군가 카이사르에게 음모를 경고하는 쪽지를 건넸으나, 카이사르는 읽지 않았음
- 브루투스는 카이사르 외의 다른 사람은 절대 죽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함 — 대의의 정당성이 훼손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
- 카이사르는 최소 23번 찔렸고, 브루투스를 보자 토가로 머리를 덮고 쓰러짐

## 그 이후: 공화정 복원의 꿈은 실패함

- 암살 직후 브루투스가 원로원에서 연설했으나 침묵만 돌아왔음
- 3월 20일 카이사르의 장례식에서 안토니우스가 여론을 뒤집어 암살자들에 대한 적대감을 형성함
- 옥타비아누스(후날 아우구스투스)가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급부상함
- 기원전 42년 필리피 전투에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패배함
- 카시우스가 먼저 자결하고, 이후 브루투스도 자신의 검에 몸을 던짐
- 플루타르코스의 기록: "그는 자신이 정복자들보다 더 축복받았다고 여겼다. 무기와 돈에서 자신을 이긴 자들이 결코 얻지 못할 덕(virtus)의 명성을 남기고 떠났기 때문이다"

## 브루투스의 불편한 진실

이상주의적 공화정 수호자라는 이미지 이면에 불편한 면모도 존재함.

- 키프로스 살라미스 시에 48%의 고리대금을 요구하며, 친구 스캅티우스의 병사들이 현지 원로원 의원들을 건물에 감금해 5명이 아사한 사건이 있었음
- 리키아 원정 중 크산투스 시를 포위했을 때, 주민들이 집에 불을 지르고 집단 자살하여 150명 미만만 생존함
- 이 과정에서 브루투스는 "엄청난 부"를 축적함
- 키케로는 이런 행태를 비판적으로 보았으나, 플루타르코스는 브루투스의 "덕"을 강조하며 이 불편한 에피소드를 침묵으로 넘김

## 핵심 포인트

- 카이사르의 마지막 말 'kai su'가 저주 석판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표현으로, 작별이 아닌 저주였을 가능성이 높음
- 브루투스는 통념과 달리 스토아학파가 아닌 구아카데미 플라톤주의자였으며, 플라톤의 정치가론에 근거해 암살을 정당화함
-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브루투스 흉상이 영웅과 악당 사이의 도덕적 양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줌
- 이상주의적 공화정 수호자 이미지와 달리 고리대금과 약탈로 부를 축적한 불편한 면모도 존재함

## 인사이트

역사적 인물의 마지막 말 한마디가 수천 년간 완전히 다른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움. 또한 정치적 행동의 철학적 동기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줌 — 브루투스의 암살은 감정이 아닌 플라톤주의 정치이론의 논리적 귀결이었음.
